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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녕김씨의 뿌리를 찾아서

족보를 편찬한다는 것은 단순히 조상의 이름을 기록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한 가문의 뿌리를 확인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뜻깊은 작업입니다.
Written by: pha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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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녕김씨의 뿌리를 찾아서 족보 서문 이야기

족보를 편찬한다는 것은 단순히 조상의 이름을 기록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한 가문의 뿌리를 확인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뜻깊은 작업입니다. 조상의 삶과 뜻을 기억하며, 그 품격과 정신을 후손에게 전하는 길잡이이기 때문입니다.

시조 문열공 김시흥 – 금녕김씨의 시작

금녕김씨의 시조는 **문열공 김시흥(金時興)**입니다. 고려 시대의 명문가로, 그는 신라 경순왕의 팔세손이자 고려 조정에서 문과에 급제해 동북면 병마사, 평장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벼슬을 지내셨습니다. 특히 외적을 물리친 공적으로 ‘문열공’이라는 시호를 받으시고, 주국(柱國) 상락군 개국남(上洛君 開國男)에 봉해졌습니다.

그 자손들은 이 위대한 조상의 공덕을 기려 본관을 ‘금녕(金寧)’이라 정했습니다. ‘금녕’은 오늘날 경남 김해 지역의 옛 지명으로, 가락국의 수도였고 신라 때는 금관군, 후에는 금해(金海)로 불리던 역사 깊은 곳입니다.

본관을 ‘금녕’이라 하는 까닭

김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널리 퍼진 성씨 중 하나입니다. 본래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신하였던 김알지에서 비롯되었으며, 신라의 56왕 중 38왕이 김씨였을 만큼 오랜 전통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같은 성씨라도 뿌리와 계보는 다양하므로, 이를 구분하기 위해 본관이 필요합니다. 금녕김씨는 ‘금해’라는 고을 이름에서 유래한 ‘금녕’을 본관으로 삼아, 여타 김씨와의 계보 혼동을 막고, 고유한 뿌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조선조 충신, 김문기 충의공

금녕김씨 가문에는 수많은 충신과 선비가 있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은 **충의공 김문기(金文起)**입니다. 그는 조선 세조 시대에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여섯 신하와 함께 순절한 인물로, 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던 학자였습니다.

또한 그의 조부 김광저(金光儲) 역시 고려가 망한 뒤 벼슬을 마다하고 은거하며 충절을 지킨 분입니다. 이처럼 금녕김씨는 나라와 왕조가 위기에 처했을 때 충성과 절의를 실천해온 명문 중의 명문입니다.

족보를 편찬하는 이유

족보는 단지 혈통을 기록하는 문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한 가문이 걸어온 길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이번 족보 편찬은 조상님의 음덕을 기리고, 자손들이 자신의 뿌리를 올바르게 이해하여, 효도와 우애, 학문과 공덕을 실천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후손들은 이 족보를 통해 가문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동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맺음말

한 그루 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가지려면 튼튼한 뿌리가 있어야 하듯, 사람 또한 조상을 기억하고 그 뜻을 잇는 데서 삶의 근본을 찾게 됩니다. 족보는 조상과 자손을 잇는 다리이며, 가문의 정신을 지켜주는 또 하나의 문화유산입니다.

금녕김씨의 족보를 펴내는 이 일은 단지 기록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깊은 의미를 지닌 일입니다.

우리는 조상의 자취를 따라 걸으며, 그 뜻을 이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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